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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루즈

"기억할게."

 

[플루토?]

 

 "이 모든 것들을. 내 마지막 숨이 다 하는 그날까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스를 보며 망토에 가려진 손을 세게 말아쥐었다. 울면 안 된다. 혹여 상처라도 나 피 냄새를 들킬까 애써 자신을 달래자 어스가 작게 미소 지었다. 불어오는 미풍에 날린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손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지금 짓고 있는 미소도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알려온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모습에 다시 치솟는 눈물을 억지로 참자 눈가가 시큰해졌다. 어스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양 눈동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고 있지만, 그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렇게 마주 보고 있어도 어스에게는 그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든 것뿐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이겠지.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맞던 어스가 그 예전 인간들이 들고 다녔던 작은 기계와도 비슷하게 생긴 것을 눌러 글을 적어 자신에게 보여 주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지는 오래되었고 그나마 하던 필담들도 시력의 상실로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마르스가 급히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핸드폰의 일종이라고 했던가.

 

 

[고마워]

 

"...전혀 고마워할 것 없어. 나도 좋아하는 곳이니까..."

 

[조금 웃기는 상황이지? 지구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았는데 나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고 있으니.]

 

"... 너도 회복 될 거야."

 

[위로는 고맙지만. 알잖아.]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는 지친 듯 더는 회복세를 보이지 않았고 무너진 생태계로 인해 그나마 조금 살아남았던 인류는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죽어버린 별이 된 것 같은 지구가 갑작스럽게 소생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스가 방독면을 쓸 필요가 없음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다.

 

회광반조. 소멸 직전의 지구가 마지막으로 제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어 꽃을 피워 내는 거라고. 인류의 흔적들이 녹음으로 지워지고 과거의 푸른 별로 돌아왔을 때 어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스의 상태를 보여주듯 회복된 것 같은 지구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들은 탄생하지 않아 외형만 그럴싸하게 포장된 빈 상자와 같았다. 오래전 어스가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하였던가. 그 물속에는 물고기가 필요로 하는 작은 미생물조차 살지 못해 부패도 할 수가 없어 깨끗한 것이라고.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어스."

 

 

작게 부르며 손을 잡자 조금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시력을 잃은 이후 주변의 작은 변화와 가벼운 접촉에도 크게 놀라곤 했는데 이제 익숙 해 진 것인지 전처럼 뿌리치지는 않는다. 이 변화에도 마음이 아파져 기어코 눈물이 맺혔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플루토. 울어?]

 

 

맺힌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건만 예민하게 알아챈 어스가 기계를 주머니에 넣고는 손을 뻗어 얼굴을 더듬어 눈을 찾았다. 습한 눈가를 조심스럽게 쓸고는 어느새 악물고 있는 턱에 힘을 빼라는 듯 가볍게 두드렸다.

 

 

"안 울어."

 

 

조금 잠긴 목소리로 툭 내뱉자 다시 미소 짓는 모습에 기어코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는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힘들어 급격한 움직임이나 과도한 힘의 사용을 버거워했지만 어스는 시력을 잃은 후 그가 사용 할수 있는 그 모든 힘을 항시 주변에 두르고 다녔다. 눈 대신 바람으로 주변의 구조를 파악하고 수분의 농도로 상대의 감정상태를 짐작하며 땅에서 울려오는 진동으로 상대방을 파악했다. 방금 자신이 울고 있다는걸 그렇게 알아챈 것이리라.

 

 

"어스.. 제발, 힘의 사용을 그만둬."

 

 

여느 때와 같은 절박한 부탁.

그러나 대답은 가로젓는 고갯짓.

천천히 떨어져 나가는 손을 잡아 자신의 눈물로 젖은 손바닥에 살며시 입을 맞춘다.

 

 

"제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어 줘.

내뱉지 못하는 간원을 알아주길 바라며 다시 한 번 입 맞춘다.

약해진 육체와 과도한 힘의 사용이 더욱 소멸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고 머큐리가 지적했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폐를 끼칠 수 없다며 고집스레 버텼다. 왜 기대려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어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셀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데.

 

 

"---"

 

 

손안의 작은 꼼지락거림이 느껴진다. 양손이 잡혀 버려 기계를 꺼내지 못해 의사전달을 못 하는 어스의 곤란함이 전해졌다. 놔 주려 힘을 푸니 살짝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한쪽 손을 잡아끌어 천천히 손을 뒤집어 피고는 손바닥 위로 집게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기억해 준다고 했잖아」

 

"..."

 

「아니야? 나 잊을 거야?」

 

"내가 널 잊을 리가 없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야. 남아 있는 시간 모두 행복한 기억들로 채워야지.」

 

"미안..."

 

「사과 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플루토」

 

"응..."

 

「나는 널 만나서 정말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 소멸이 다가오고 있는 이 순간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어스...난, 난 너에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다 지나간 일이고 이젠 그것도 추억이야. 네 속에 남아서 나를 떠 올릴 수 있는 수많은 기억들인걸. 그 기억들이 있는 이상 나는 늘 너와 함께 하는 거야.」

 

"..."

 

「그러니 슬퍼하지 말고 웃어줘 플루토.」

 

 

전할 말이 끝났다는 듯 손바닥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껴서 잡아온다. 마주 잡은 손으로 전해져 오는 예전보다 낮은 체온에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 이렇게 바보같이 자책과 미련으로 덧없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 어스의 손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줘 꼭 잡았다. 나는 아직도 어리구나.

 

 

"계속 사과만 하네. 미안. 난 여전히 바보인가 봐. 울지 않을게."

 

 

툭- 하고 이마를 마주 대고 반대편 손을 잡아 자신의 입가로 대었다. 웃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올라간 입꼬리를 느낀 것일까 어스도 곱게 눈을 휘며 마주 웃었다. 이 얼굴을 기억하자. 아름다운 지구와 함께. 내가 소멸할 그 날까지 유일하게 사랑할 이를.

 

 

"기억하겠어.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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